생각들 10

생각추적

불안과 우울이 가끔씩 찾아온다. 그렇다고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는 정도는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혹은 대다수가 겪는 그런 것들. 예전에는 이 불안과 우울이 통제 불가능했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는 단계다. 우울하지만, 불안하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다보면 그것이 어쩌면 내 삶의 작은 활력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나날이다. 일상적인 삶의 기저를 이루는 보통의 상태와 이 두 가지 상태를 드나들 수 있기에 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는 한다. 지금 막 대충 훑어 읽은 아도르노의 책을 감히 인용하자면, 나는 '자기 유지' 만을 하지 않았기에 타인을 지배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도구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그래서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라면 정말이지 곤욕..

생각들 2016.03.04

스탠드 아래에서

스탠드 아래에서 이제는 잘 모르겠다. 글을 조금이라도 잘 썼는지, 아니면 글을 잘 쓰려는 지점에 다다르려 생각으로만 고군분투했는지, 그래서 내가 한때는 글을 잘 썼노라고 착각했는지 말이다. 여러 책을 탐독을 해도 무언가를 적어내리기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읽었던 단어나 문장이 그저 입에 머금고 서서히 농축되어 가는 기분만 든다. 말하기는 표현력이 늘지 않았을지언정 말은 제법 많아진 게 느껴진다. 한때는 대상 없는 존재에게 말을 잘 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하게 해준다면 다른 능력을 줄 테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가끔 돌아오지도 않을 말과 부탁을 했다. 글에 대한 강박감이 강해지니 이런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대상없는 존재가 이제야 내게 답변을 보낸 건가 싶다. ..

생각들 2016.02.27

기분추적

중학교 시절 나는 '정말'이라고 수없이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학교에 오면 바로 잠을 자고 점심시간에 일어나서 종례시간 전까지 다시 잠을 자고는 했다. 나는 공부를 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한 번도 시험에서 문제를 제대로 풀어 본 적이 없었다. 또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반에서 왕따로 지냈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내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를 듣기도 했다. 왕따의 이유는 간단했다. 뚱뚱했고 여드름이 덕지덕지 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가족들 또한 그런 내 모습이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기에 뭐라 할 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어쩌면 외모에 대한 강박이 심한 나라에서 일반적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정서이니까, 또 자식이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라는 마음이 있겠지 하며 그냥..

생각들 2016.02.27

<미스터 노바디>를 보며 잠시 들었던 생각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들은 가능성 상태로 남는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고심 끝에 선택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선택은 앞으로의 여러 선택을 남겨둔다. 그리고 나는, 당신은 이 선택의 연쇄로 삶을 팽창해나간다. 는 그런 주제를 다룬 영화다. 어느 순간 이 영화는 내 인생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였고 또 내게 중요한 선택에 놓였을 때 봤던 영화이다. 나와 같이 영화를 본 그 사람은 영화를 보던 중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래서 그녀가 더 좋아졌는지 모른다. 더 그전에, 친구의 부탁으로 어느 곳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를 못 만났을 것이다. 아니, 조금 더 전으로 돌아가면 어렸을 적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지 못했으면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내 ..

생각들 2015.08.13

충만한 것과 충만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혼자 있을 때면 지난 날들을 생각하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수없이 많은 단편적인 삶들을 살아왔음을 느낀다. 그렇게 단편적인 서사들은 현재의 나라는 서사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서로 동떨어져 있는 듯한 내 이야기들은 하나의 나를 이룬다고 생각하니, 때로는 삶의 경이를 느끼기까지도 한다. '나'라는 존재는 '나'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그런 철학적인 문제를 던지고 깊은 생각이 다다르는 곳은 언제나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이 만약 어느 한정된 공간이고 바라보는 곳이 천장이라면 드는 생각은 '나'라는 존재는 제법 이 세계에 충만한 존재라는 생각.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이 바깥이고 보는 것이 하늘이라면 드는 생각은 내 존재와 수많은 고민들은 저 하늘의 구름에..

생각들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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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세월호 안에서 벌어진 영상들은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차마 보지 못한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태도와 노답 똘아이들(정부도 포함이지만)의 행태에 무력감과 풀 곳 없는 분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연대의 연대감과 지속성 덕분(특히 유가족 분들)에 휘청거리면도 버티고 희망을 가졌다. . 작년 캘리니코스가 한국에서 강연을 했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축구 경기장에서 96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그 사건에 책임이 있던 경찰은 나몰라라 했고 정부 또한 이 사건을 은폐했다. 그 이유는 그 경찰들이 대처에게 힘을 실어주도록 광부 노동자들의 파업을 분쇄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25년 간 끊임없는 진상규명..

생각들 2015.07.23

대체불가능성-2015.06. 12에 쓴 글

요즘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가 했던 문학이야기를 듣고 있다. 일부로 몰아서보기로 마음먹었는데, 기다리기 위해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막힘없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했다. 어제는 2화를 들었다. 시작하면서 그는 단편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단편 소설에는 여러 방식이 존재하는데, 그가 생각하는 단편 소설은 '진실이 늘 한발 늦게 나타난 다는 것'이었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어떤 사건이 돌이킬 수 없다고 인식했을 때 비로소 내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을 인식했을 때 주인공인 '나'는 자신의 균열(혹은 망가짐)을 알게 되고 균열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 말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까지 이어오면서 나는 내가 망..

생각들 2015.07.23

인정이론으로 본 <벌레 이야기>와 <밀양>

기말과제로 썼던 글. 급하게 하느라 마지막은 밋밋하다. 윤 인정이론으로 본 와 1. 두 작품에 드러난 인정의 문제 이 청준의 소설을 일컫는 말이 있는데, ‘윤리학적 상상력’이 그것이다. 이 말은 문학 평론가 신형철이 이청준의 작품을 두고 한 말이다. ‘윤리학적 상상력’ 즉 이 단어의 의미는 그의 소설이 윤리학적 의제와 난제를 끌어올리려고 하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청준의 와 그 소설을 차용해서 영화로 만든 이창동의 은 윤리학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이 두 작품의 윤리적 문제는 ‘용서’의 문제이다. 두 사람 모두 소설과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 용서에 대한 의제였는데, 이 용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누가 하는 것인가를 화두로 자신의 작품 속에 ..

생각들 2015.04.27

생각.

- 3월부터 해오던 아르바이트가 오늘에서야 끝이 났다. 타지에서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자리였고 여러 사람들을 상대해 볼 수 있는 더 없는 경험이었다. 무언가 꾸준히 해온 것을 일순간 그만 둔다는 건 때로는 허한 기분을 가져오는 것 같다. 이번 아르바이트도 그런 기분에 가깝다. 그래서 퍽 아쉬운 느낌이 든다. 다만 온종일 딱딱한 발바닥으로 서있는 고통은 이루말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조금은,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좋다. 주말이 주말인 것 같지 않은 날들을 몇개월 보내다보니, 주말을 보냈던 느낌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알차게 보내자! - 얼마 전에 민주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과 같이 책을 만들자고 했다. 예전부터 내가 쓴 글들을 모아서 책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

생각들 2014.05.11

어린 시절1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가다보면 내가 멈춰져 있는 곳은 언제나 어린 시절이었다. 여름에는 쌔까맣고 겨울에는 뽀얀 피부로 번갈아 변하는 것이 가끔은 내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묘한 설레임을 주었더랬지. 지금은 어떤 류의 이야기를 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나름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하고 별 시덥잖은 허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유치원을 마치면 나는 2차선 아스팔트 옆 인도를, 유치원을 갈 때나 집으로 가는 길에 걸었었지. 나는 그 옆에 인도를 따라 쭉 늘어서 있던 화단이 참 좋았다. 꽃이 피는 계절이면 꽃을 따다 꿀이 있나 쪽쪽 빨아 먹어보기도 했고 덜 자란 것 같지만 다 자라서 초록빛이 유난히 짙었던 잎사귀들을 보는 것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소박한 자연의 즐거움을 선..

생각들 201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