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대체불가능성-2015.06. 12에 쓴 글

교환불가 2015. 7. 23. 19:23

 요즘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가 했던 문학이야기를 듣고 있다. 일부로 몰아서보기로 마음먹었는데, 기다리기 위해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막힘없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했다. 어제는 2화를 들었다. 시작하면서 그는 단편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단편 소설에는 여러 방식이 존재하는데, 그가 생각하는 단편 소설은 '진실이 늘 한발 늦게 나타난 다는 것'이었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어떤 사건이 돌이킬 수 없다고 인식했을 때 비로소 내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을 인식했을 때 주인공인 '나'는 자신의 균열(혹은 망가짐)을 알게 되고 균열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 말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까지 이어오면서 나는 내가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내게 균열이 있다는 걸 잊어보려고 애를 써도, 인식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균열은 갈라지고 있는 댐처럼 걷잡을 수 없이 틈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 균열의 근원지는 언제부터 나와 같이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대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깨달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이 균열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술을 아무리 퍼마셔도, 사람들을 만나보아도, 사랑에 잠깐 빠져보아도 매워지지 않는 일종의 우주 같았다. 균열이라는 작은 틈에 들어가면 그 안은 계속 팽창하고 있는 우주를 떠도는 기분일 것 같았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날로 늘어나는 시기라, 나는 점점 더 망가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니, 실제로도 나는 몸도 마음도 망가지 고 있다. 어쩌면 균열로 인한 당연한 수순인 듯,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렇게.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균열의 '대체불가능성'은 내게 보란 듯이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내게 정확하게 다가오고 있다. 한 번쯤 이대로 모든 것을 놓은 채 나를 망가뜨리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망가지고 나서 다시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내자, 나를 산산조각 내서 그 작지만 큰 균열을 미소한 존재로 만들어버리자.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과정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의 고민과 했을 때조차도 많은 시간이 내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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