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어린 시절1

교환불가 2014. 4. 17. 21:12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가다보면 내가 멈춰져 있는 곳은 언제나 어린 시절이었다. 여름에는 쌔까맣고 겨울에는 뽀얀 피부로 번갈아 변하는 것이 가끔은 내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묘한 설레임을 주었더랬지. 지금은 어떤 류의 이야기를 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나름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하고 별 시덥잖은 허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유치원을 마치면 나는 2차선 아스팔트 옆 인도를, 유치원을 갈 때나 집으로 가는 길에 걸었었지. 나는 그 옆에 인도를 따라 쭉 늘어서 있던 화단이 참 좋았다. 꽃이 피는 계절이면 꽃을 따다 꿀이 있나 쪽쪽 빨아 먹어보기도 했고 덜 자란 것 같지만 다 자라서 초록빛이 유난히 짙었던 잎사귀들을 보는 것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소박한 자연의 즐거움을 선사해줬지. 


  작은 골목을 들어서고 조금만 걸으면 붉은 벽돌로 드리워진 곳에 어느 좁은 입구를 금방 볼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떨어져 입구 사이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 입구에는 아버지가 세워놓았던 작은 빌라에 비해 커다랗게 보였던 검은 중형 자동차와 따로 떨어져 있는 갈녹색의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주황빛과 빨간빛이 감돌던 벽돌들이 보여준 세계는 마치 어느 만화영화처럼, 내게는 다른 차원의 곳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 입구를 들어서면 양쪽에는 작은 빌라 건물 두 채가 있었다. 나는 들어선 방향의 오른 쪽의 빌라, 그 중에서도 반 지하에 있는 녹녹한 곳에 살았다. 비가 미친 듯이 내릴 때면 아주 가끔은 집에 물이 차기도 했고 벌레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귀뚜라미인 줄 알았던 곱등이가 가족들 만의 공간을 눈치채지못하게 들어오기도 했었지. 그래도 벌레에게도 객으로서의 도덕은 있던지 매번 신발이 널부러져 있던 신발장에 고요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녹녹하고 좁은 우리 집에서 받아줄 수 있었던 벌레는 바퀴벌레와 개미가 한계였다


  그때에는 게임 팩을 넣어서 하는 게임에 빠지기도 했었다. 여러 게임 중 나는 '수퍼 마리오'를 하는 것이 어찌나 즐겁던지. 그리고 새로운 배경과 여러 난관들을 헤쳐나가는 것이 내게 어찌나 영웅심을 불어넣었던지, 마지막에 공주를 구해줬을 때 그 기쁨은 이루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게 여행가의 기질이 스며들었던지 검은 배경과 뿌연 글자가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게임이 멈췄을 때, 나는 그 뒤의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멈춰진 TV박스를 한 동안 슬픔을 머금은 채 기다리기도 했었지. 끝내 그 뒤의 이야기는 없었고 나는 매번 게임의 처음, 중간 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혹은 나만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펼치기도 해보았다. 


  지금은 생각하면 아련한 기억. 그리고 가끔은 무엇을 주고서라도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 그렇지만 지금이라는 시절도 기억이 되고 훗날에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되는 그런 시절이 될지도 모르지. 현재에만 만족하기보다는 과거를 그리워할 줄 알고 미래를 그려볼 줄도 알면서 그렇다고 현재에 무신경하지 않은 그런 연결고리 같은 삶을 


  살아,


  보아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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