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기분추적

교환불가 2016. 2. 27. 22:26

<기분 추적>


  중학교 시절 나는 '정말'이라고 수없이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학교에 오면 바로 잠을 자고 점심시간에 일어나서 종례시간 전까지 다시 잠을 자고는 했다. 나는 공부를 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한 번도 시험에서 문제를 제대로 풀어 본 적이 없었다. 또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반에서 왕따로 지냈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내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를 듣기도 했다. 왕따의 이유는 간단했다. 뚱뚱했고 여드름이 덕지덕지 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가족들 또한 그런 내 모습이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기에 뭐라 할 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어쩌면 외모에 대한 강박이 심한 나라에서 일반적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정서이니까, 또 자식이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라는 마음이 있겠지 하며 그냥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가족에 대한 애정은 다른 곳에서 만큼 생기지 않는다.


  학교의 의미를 딱히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집에 가는 길에 만화책 방에 가서 만화책을 빌려 읽고 새벽이 될 때까지 컴퓨터 게임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 말고는. 그때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느껴지는 감각들은 오싹하다. 나는 무기력했고 몇 번은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고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반 중학생 같지 않은 중학생으로서의 삶을 영위해나갔다. 그렇게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랐던 것 같다. (여담으로 중학교 성적이 44.444...이렇게 나온 적도 있었다. 오! 신기하다! 하면서 친구들한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해서 실업계(혹은 전문계)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당시 중학교에서 실업계에 대한 소문은 마치 온갖 싸움꾼들이 모여 혈투를 벌이는 장소로 묘사되었고, 어느 곳에서나 담배를 피는 등 중학생들이 알 수 있는 온갖 악행들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그중 일부는 맞았고 나는 왜인지 모르게 이런 환경이 잘 맞았던 것 같았다. 심지어 애들과 잘 어울려 놀기도 했다. 아무튼 그곳에서 나는 공부 성적에서 1~2등을 했다. 내가 머리가 뛰어나서 라기보다는, 전문계에서는 시험 문제를 대부분 다 알려주었다. 그래서 고1 때 한 번 속는 셈치고 알려준 부분만 공부를 해보니 그곳에서 '딱' 답이 나왔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어이없게도, 생애 첫 일등을 해보았다. 그때에는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고는 할 수 없었고 문제 푸는 재미는 조금 있었다. 게다가 시험기간에만 시험공부를 하면 성적은 잘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곳에 간 거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흔한 야자도 하지 않아서 좋았고, 내가 지금까지 알던 환경과는 다른 곳에서 생활해서 좋았다. 조금 후회 하고 있는 점은 책을 많이 읽을 걸, 글쓰기 연습이라도 할 걸 이라는 것이었다. 근데 당시에는 난 그런 건 잘 몰랐다. 그래도 책 읽는 재미는 붙이기는 했다. 


  나는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 흥미를 조금씩 붙여가기 시작할 때쯤 나는 벌써 4학년이 되었다. 아직 한참 부족한데. 그리고 작년부터 책도 잘 읽히지 않고 글쓰기 연습도 꾸준히 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도 않았다. 특히나 내가 생각했던 것을 페북이나 어느 신문 칼럼에서 글 잘 쓰는 사람이 쓴 걸 보며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고 허망함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걸 글로 써보기보다는, 내가 생각했던 것을 글 잘 쓰는 누군가가 쓰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무엇부터 해야 하지 라며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일년이라는 휴학기간이 끝났다. 지금의 기분은 그때 느꼈던 중학생 시절의 기분인 것 같다. 무기력하고 그저 하루를 보내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삶. 그것을 나는 어느샌가 행하고 있었다. 내면의 문제도 있지만, 대학원을 가기에는 특히 외부적인 조건이 많이 따르더라. 집안의 형편은 대학원을 감당하기에는 넉넉지 않다. 사실 대학원을 가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거 말고는 딱히 비전이 없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보고 싶지만, 그건 책을 읽을수록 내 자신으로서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느낀다. 그런데 나는 그 이외의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깜깜하다. '깜깜하다' 이 기분을 추적하기 위해 이렇게 마구잡이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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