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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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불가 2015. 7. 23. 19:27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세월호 안에서 벌어진 영상들은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차마 보지 못한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태도와 노답 똘아이들(정부도 포함이지만)의 행태에 무력감과 풀 곳 없는 분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연대의 연대감과 지속성 덕분(특히 유가족 분들)에 휘청거리면도 버티고 희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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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캘리니코스가 한국에서 강연을 했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축구 경기장에서 96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그 사건에 책임이 있던 경찰은 나몰라라 했고 정부 또한 이 사건을 은폐했다. 그 이유는 그 경찰들이 대처에게 힘을 실어주도록 광부 노동자들의 파업을 분쇄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25년 간 끊임없는 진상규명 운동을 벌였고 이제야 정부의 은폐 공작이 드러나기 시작했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과연 세월호 사건의 진실이 언제 밝혀질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긴 시간 동안에 우리는 얼마나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그의 강연 시간 내내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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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주류 언론에서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거나 해도 스쳐지나가 듯 보도를 한다. 하지만 주위를 조금만 더 둘러보려고 하면 언제나 주위는 세월호 사건 진상에 대한 서명운동이나 작은 문화재, 운동 등이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새 세상이 흉흉(대부분 그래왔지만)해서인지 세월호 사건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고 신경을 쓰지 않는 이들도 있고 또 이 사건에 대해 비난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체감하기에는 점점 개인주의적이고 자신만 만족하면 된다는 듯의 조류들이 더 만연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북조선일보가 달관세대를 논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 살기에 '만' 적당히 벌어서 살면된다 라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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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삶이 정말 우리가 바랐던 생활양식이고 삶이었는가. 백번 양보해서 그런 삶이 현재 만족스럽다고 하자. 하지만 '달관세대' 전과 이후를 생각해보자. 달관세대 전에는 달관세대 이후보다는 조금은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조건들이 더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달관세대들은 이에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보다도 더 나빠진다면 그것에도 만족스럽다고 할 것인가. 내게 있어서 그것은 노예근성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내 목숨만 유지시켜주는 대신 생활조건은 나빠져도 된다는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개인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조건과 의식은 우리가 속한 사회가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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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건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이 사건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거나 아니면 마음만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니 달라질 것이다. 지금, 현재보다 더 나빠지게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가만히 있으라'의 대가이다. 이럴 때 맑스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짧은 태제,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에서 1번은 11번을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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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의 주요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오직 객체의 혹은 관조의 형식 아래에서만 파악되고 있다는 것 ; 그리고 감성적 인간 활동으로서, 실천으로서 파악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능동적 측면은 유물론에 대립해서 관념론에 의하여-물론 관념론은 현실적 감성적 행위 자체를 알지 못한다-추상적으로 발전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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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맑스 이전의 유물론, 그리고 관념론의 비판과 종합이었다. 영어로는 object(유물론) activity(관념론). ob/ject는 내 앞에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맑스는 물질을 바라보지만 그저 관조에 그치는 유물론을 비판한다. 또한 생각만으로 실천하려고 하는 activity(관념론)를 비판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모두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11번 태제에서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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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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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바꾸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었다. 역사는 그렇게 계속 나아갔다.


2015. 03. 16일에 내 페북에서 퍼온 글. 언제 썼는 지는 정확히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