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스탠드 아래에서

교환불가 2016. 2. 27. 22:30

스탠드 아래에서


  이제는 잘 모르겠다. 글을 조금이라도 잘 썼는지, 아니면 글을 잘 쓰려는 지점에 다다르려 생각으로만 고군분투했는지, 그래서 내가 한때는 글을 잘 썼노라고 착각했는지 말이다. 여러 책을 탐독을 해도 무언가를 적어내리기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읽었던 단어나 문장이 그저 입에 머금고 서서히 농축되어 가는 기분만 든다. 말하기는 표현력이 늘지 않았을지언정 말은 제법 많아진 게 느껴진다.


  한때는 대상 없는 존재에게 말을 잘 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하게 해준다면 다른 능력을 줄 테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가끔 돌아오지도 않을 말과 부탁을 했다. 글에 대한 강박감이 강해지니 이런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대상없는 존재가 이제야 내게 답변을 보낸 건가 싶다. 내뱉는 만큼의 단어의 숫자가 글로 쓰는 단어의 수를 앗아가는 기분. 그 이후 이 입에 머금은 것을 줄 테니 글을 조금이라도 잘 쓸 수 있게 해달라고는 쉽사리 부탁을 못했다.


  글을 쓴다는 건 무엇일까. 처음으로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든 건 네루다의 시, <시>를 읽고 난 후였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시. 어디서 왔는지 그 내력을 찾다가 자신이 세상의 미소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그래서 시를 찾는 과정에서 네루다는 자신도 모르게 시를 배우고 알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후로 나도 길을 걸을 때나, 바람에 스치는 여러 사물들의 소리를 듣기위해 분투했고 잠시나마 그 과정에서 나온 산물을 글로 옮기는 작업도 해보았다. 무언가 나아지는 기분도 들었고 쾌감도 들었다. 글을 쓸 때 느껴지는 리듬감, 단어끼리 매끄럽게 맺어지는 관계, 그럼으로써 적절하게 나오는 수사적 표현들. 조금은 엉킨 기분이 들었지만 차차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산출한다는 건 두 가지가 있다. 의도를 가지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 의도를 가지지 않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아무 문제없이 지내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가령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걷는 것, 먹는 것, 컴퓨터를 하는 것 등 이것들은 내가 굳이 계획을 세우거나 논리적인 과정을 굳이 거치지 않더라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관계(가령 나와 대화 나누는 사람의 관계)는 확장되어 나간다. 그와 반대로 의도를 가지는 것은 의도가 없는 이상 무언가를 산출할 수 없다. 글은 그렇게 무언가를 의도 했을 때 나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거만했던 것 같다. 시를 느끼는 것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내가 느끼는 걸 글로 만든다는 건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느낌을 받아들이는 만큼 글은 그걸 소진하지 못했다. 내 작은 시적 감각은 그 느낌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감각은 훈련을 통해서 확장되는 것이었다.


  네루다는 시가 자신도 모르게 찾아와서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시를 글로 적었다. 그리고 그런 시를 산출해내기 위해서 그는 많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설프게나마 간직하고 있었던 시적 감각을 서서히 잃어버렸다. 어느 날, 시를 쓰려고 할 때 써지지 않는 이유를 한참 찾다가 나는 그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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