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내가 살았던 공간

교환불가 2016. 9. 28. 00:38

과제 덕분에 쓴 글. 옛날 생각이 나네.




군대 휴가 나와서 찍은 사진. 옛날에 살던 동네다.



  공간 하나. 초등학교 6학년 중반 때까지 살던 곳이 있었다. 그곳은 안양 어느 작은 빌라의 반 지하였다. 벽돌담벼락이 작은 빌라 몇 개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에 들어서면 양 옆에 네모난 빌라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앞은 네모나게 무언가 딱 들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이곳에 들어서면 빌라 사람들이 나오곤 했다. 대부분의 빌라 사람들끼리 알고 지내던 터라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게 흔했다. 또한 몇몇 이웃집에 놀러가서 놀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아빠가 일하는 대공원에 동네 사람들을 데려갔던 기억도 난다. 내가 유치원 시절 동네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크게 울부짖자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기도 했다.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당연히 나누고, 그들 집에 놀러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또, 그들과 같이 놀러 가는 게 나는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었다.


  공간 둘. 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가끔 주춤하고는 했다. 계단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고 집에 도착하면 대부분 나 혼자 있던 날이 많았었다. 또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작은 창고가 있는데 그게 더 내게 공포감을 주기도 했다. 다행이 조금씩 공포감이 사라지기는 했다. 그리고 더욱 다행인 것은 그 당시에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간 특성상 축축하고 어두워서 집에는 언제나 바퀴벌레가 있었다. 손을 아무 곳에 짚으면 바퀴벌레를 눌렀던 적도 잠에서 깨면 옆에 바퀴벌레 시체도 가끔 볼 수 있었다. 또 문을 열어두거나 하면 곱등이가 들어오곤 했었다. 그리고 때로는 어느 작은 틈에서 개미떼가 나오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벌레를 손으로 잡아서 놀았던 때라 별 탈은 없었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공간 셋. 거실 및 부엌 그리고 내가 잠을 자는 공간은 하나였다. 나는 냉장고 바로 옆에서 잤다. 또 한 쪽 옆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양 옆의 공간에 내가 겨우 들어갈 만큼의 공간이어서, 꿈을 꿀 때면 자주 꾸는 꿈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반 지하라서 겪은 독특한 기억이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비가 무척이나 많이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나를 깨웠다. 난 옆으로 누워서 두자고 있었는데 한 쪽 면이 축축했다. 비가 집 안까지 차서 나를 깨운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 네 명이 모두 일어나 집에 찬 물을 빼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도 잠을 자고 있었을 때다. 잠을 자던 중 안방에서 쾅 하고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해가 뜨기 시작할 때쯤의 새벽이었다. 안방에는 창문-흐릿하게 보이는-이 있고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담벼락이 있었다. 창문을 보니 자동차 형체로 보이는 물체가 창문 바로 앞에 있었다. 내 예상대로 그건 자동차였다. 운전자가 음주운전으로 담벼락을 뚫고 집 근처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공간 넷. IMF 시절에도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IMF이후 사람들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 게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티비를 보면 어느 누가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와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는 이야기, 금 모으기, 그중에 특히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자신들이 힘들어서 세뱃돈을 조금 밖에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나는 여전히 반 지하에서 살고 있다는 공간적 특성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이들은 적어도 내가 살던 공간보다는 더 좋은 곳에서 살았다. 그런데 어렵다고 하다니, 아무 것도 모르는 시절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괜히 세뱃돈을 적게 주고 싶어서 그러는가 라며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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