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충만한 것과 충만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교환불가 2015. 7. 23. 19:30

  혼자 있을 때면 지난 날들을 생각하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수없이 많은 단편적인 삶들을 살아왔음을 느낀다. 그렇게 단편적인 서사들은 현재의 나라는 서사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서로 동떨어져 있는 듯한 내 이야기들은 하나의 나를 이룬다고 생각하니, 때로는 삶의 경이를 느끼기까지도 한다. '나'라는 존재는 '나'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그런 철학적인 문제를 던지고 깊은 생각이 다다르는 곳은 언제나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이 만약 어느 한정된 공간이고 바라보는 곳이 천장이라면  드는 생각은 '나'라는 존재는 제법 이 세계에 충만한 존재라는 생각.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이 바깥이고 보는 것이 하늘이라면 드는 생각은 내 존재와 수많은 고민들은 저 하늘의 구름에 비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충만한 것과 충만하지 못한 것의 모순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런 모순 속에서 나를 '나'이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충만한 것이 나를 활력있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삶의 허한 것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이 둘 다 내 자신이 아니게 하는 것은 없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나와 내 자신의 내부만을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외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외부를 고려했기 때문에 충만한 것과 충만하지 않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라 조금은 확신한다. 현재 나를 '나' 자신이게 하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 외부 세계의 존재 그리고 타인의 존재. 이 세 가지를 공간으로 두고 보았을 때 충만한 것과 충만하지 않은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간이 적은 곳에서 내가 충만함을 느끼는 것은, 곧 달리 말하면 나와 외부 세계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감이, 내가 있는 공간의 거리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충만하지 못함을 느끼는 것은 나와 외부 세계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가 길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공간에 비유해서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내가 그렇게 느낌을 비유한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하늘을 보면 허함이 느껴지는 것 같은 것이 마치 외부 세게와  타인과의 관계가 충만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과 비슷했기에 비유를 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충만한 것과 충만하지 않은 것. 또 다른 동의어로 말하면 관계의 충만함과 충만하지 않음이 그것이다. 나는 현재 '나'이기에 이곳에 있고 이런 글들을 쓰고 있다. 과거의 나는 나를 부정(헤겔의 부정개념)했기에 지금의 '나'인 것이다. 또 다른 나를 '부정'하는 것은 미래의 '나'일 것이다. '부정'이라는 것은 이전의 나를 부정함으로써 이후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정은 극복의 개념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지금 어떻게 보면 나를 '부정'하는 단계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충만한 것과 충만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나는 어느 것도 선택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내가 어느 곳에 기울어져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요새 느끼는 것은 현재 나는 충만하지 않은 곳에 더 발을 디딛고 있는 것 같다. 충만하지 않은 것을 인정하고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때가 온다면 나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2014. 09. 17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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