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것

<수저게임>

교환불가 2015. 12. 11. 19:27


  흙수저, 금수저 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다양성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부모가 가진 재산으로 단순하게 표현될 수 있다니. 재산에 대해서든 여러 상징적 경계에서든 자신이 속한 위치에 따라서 하위구분과 상위구분이 점점 명확해지는 이곳에서, 거부하고는 싶지만 거부하지 못하는 것에 약간의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월간잉여’를 책임지고 있는 ‘최서윤’ 씨가 ‘수저게임’이라는 게임을 들고 페이스북에 찾아왔다. 타로를 배운다는 소식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나타나다니 놀라운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가끔씩 올라오는 황금수저 사진과 흙수자 사진 그리고 수저게임의 규칙을 보면서 '수저계급론'을 재미라는 하나의 측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라는 마음도 한편으로 들었다. 며칠 뒤, 수저게임 참가단 모집이 공지가 되었고 나는 재빠르게 지원을 했다. 결과는 당연히 지금 글을 쓰고 있으니 당첨이 되었다! 체험을 하러 가기 전, 규칙을숙지하고 출발을 했다.


 - 규칙은 페이스북에 나와있는 것과 체험 당시 규칙 종이를 받은 것을 섞었고 모든 규칙을 적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게임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서-


  게임의 기대효과 

● 게임 참여자들의 토론 능력과 협상 능력 향상을 돕는다. 
● 양극화 사회를 개선할 구조적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문화를 확산한다. 

게임 규칙

● 게임 참여자 5인~10인 / 참여자 외 진행자 1명과 은행장 1명을 필요로 한다.
● 참여자는 타로점을 칠 때 뒤집은 카드를 선택하듯 수저게임 카드를 선택한다. 그로써 신분(금수저, 흙수저)이 부여된다.

● 시작 당시 재산 

     금수저 - 부동산 3/ 칩 10 - 부동산 중 하나는 직접 거주하는 곳이다. 나머지 두곳을 통해서는 임대수익을 얻는다. (한 턴당 칩 두개). 

     흙수저 - 칩 10 / 자가 주택이 없으므로 임대료를 지불한다.(한 턴당 칩 하나) 

게임의 첫 턴은 각각 취업과 대학진학을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 대학에 진학하면 한 턴마다 칩 하나를 소모하며(총 4턴), 대학을 다니지 않고 취업하면 칩을 하       나씩 획득한다. 대신 대학 졸업 후 취업하면 매 턴마다 칩 두 개씩 획득한다.
● 총 10턴. 법안이 발효될 때마다 한 턴이 소모된다.
● 법안은 게임 순서에 따라 제시 한다. 입법 여부는 다수결의 결과에 따른다. 다수결이 있기 전 진행자는 법안 내용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유도한다.
● 법안이 등록되지 않으면 턴은 소모되지 않는다. 

● 무주택상태로 4턴 소모 시 질병이 발생하며 질병 발생 시 칩 1개가 소모된다.

● 두 번째 질병 발생 시 사망한다.

● 금수저들은 협의하여 세 턴 당 한 번, 한 명의 흙수저를 감옥에 보낼 수 있다.

● 감옥에 간 흙수저는 두 턴 동안 어떤 사회활동도 할 수 없으며, 출옥 뒤 한 턴 동안 취업난을 겪어 1턴 이상 실업 상태에 처한다.
● 항상 금수저보다 흙수저의 수가 많도록 조정한다. 실제 현실에서 금수저는 10%도 안되며 90% 이상의 사람들이 흙수저이기 때문이다.


  '참가단이 모두 모이기 전에 수저 게임 구성물 중 일부를 앨범에 남겨놓았다.'


  참가단이 모두 모이고 자신의 소개를 했다. 사실 나는 어느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대부분 비슷한 생각이나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나와 다른 신념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니 조금은 긴장을 했다. 토론을 할 때 이들과 의견조율을 잘 할 수 있을지, 내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 등 상대방과의 마찰을 체험 전날부터 제법 걱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소개가 끝나고 조금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게임을 시작했다. 첫 게임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첫 수저는 흙수저..가 나왔다.'


  처음 게임 진행은 모든 사람이 누가 어느 수저인지 알고 시작을 했다. 위의 사진에 보듯이 나는 흙수저가 되었다. (잘 퍼지지도 않는데도 얼굴 찌푸리며 땅을 꿋꿋이 푸는 저 농부를 보라.) 첫 턴 대학진학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현재 내가 속한 위치랑 같은 '대학진학'을 선택했다. 처음 소비가 크더라도 취업을 하고 나면 칩 2개 씩 얻기에 흙수저인 상태에서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 턴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는 등록금과 임대료로 벌써 칩 3개를 소모하고 말았다. 10개 밖에 되지 않는 저 칩에서 두 개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란... 여유로이 등록금을 내려고! 했지만 임대료를 받고 대학을 다니는 금수저는 재산에 변화가 없었다. 다만 플레이어에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는는 점만 빼면 말이다. -이때부터였을까요 금수저에 꿈을 키웠던게...-


  바로 다음 턴에서는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턴이 마련되어 있다. 나와 같은 흙수저들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고자 했다. 여러 법안이 적혀 있는 카드들도 있어서 그 틀을 가지고 토론을 할 수 있었고 빈 칸의 카드로 아무 주제 상관없이 토론도 할 수 있었다. 여러 법안이 제안되었다. 가령 금수저는 임대료를 더 올려야 한다는 것(먹고 살기 힘들다나 뭐라나?!), 흙수저들은 자신의 삶과 바로 직결되는 법안이 나왔다. 그중에서 발의가 된 것은 '종부세'였다. 몇 개 이상의 부동산을 가진 금수저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그 세금을 가지고 위기에 처한 '흙수저' 발생 시에 구제용으로 쓰기로 했다. 이런 법안이 발의가 되자 부동산을 가지고 있던 금수저 중 한 명은 자신의 부동산을 파는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다음 턴은 금수저끼리 협의를 해서 '흙수저' 한 명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턴이자 '랜덤 카드'를 뽑을 수 있는 턴이다. 금수저 두 명은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방해한 '종부세' 발의자를 단숨에 감옥으로 보냈다. 그리고 '랜덤카드'는 토론 중 발언을 가장 많이 한 사람에게 뽑을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맙소사, 그가 뽑은 건 흙수저 모두가 '빨갱이'로 몰려서 감옥에 가는 상황이 주어진 카드였다. 흙수저 모두는 당황했고 결국 다른 법안 차례가 왔을 때 우리는 아무 발언을 할 수 없이 감옥에 갇혀 지냈고, 금수저를 위한 법안이 그저 통과되는 것을 그저 넋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출소를 한 후 기분은 정처없이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닌 칩은 얼마 없었고 앞으로 칩을 모은다고 해도 임대료로 빠져나가 모든 턴이 끝나도 본전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다음 법안 발의 턴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대학을 다니는 흙수저 중 한 명이, "흙수저 대학생 무상등록금" 법안을 제시했다. 여기서 흙수저끼리 의견이 처음으로 갈리는 턴이었다. 대학을 다니지 않고 취업을 한 흙수저는 이 법안에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대학생은 취업을 하면 턴 당 두 개의 칩을 받고 자신은 계속 하나의 칩을 받는데, 앞으로 두 개의 칩을 받을 대학생이 아무런 희생없이 무상 등록금으로 혜택을 본다면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무상 등록금에 동조해줄테니 고졸과 대졸의 임금이 같은 법안을 나중에 동의해달라는 협상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부분이 생기자 처음 협동적이었던 흙수저들은 각자 작은 협동체로 협동을 해가는 추세를 보였다. 여러 의견들이 나왔다. 그럼에도 두 번째 법안인 '흙수저를 위한 무상 등록금'은 통과가 되었다.


  중간 쯤에 의견이 갈리는 것 같이 보이기는 했지만 계속되는 협동으로 '흙수저'를 위한 법안을 발의할 수 있었다. 게임이 끝났을 때 쯤 깨닫게 된 것은 흙수저들은 대부분 비슷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금수저는 여전히 잘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비슷한 재산이라고 해봤자 처음 재산과 비슷하거나 적은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반면 금수저들은 재산이 처음보다 더 많아진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이유를 생각해보니, 가령 종부세를 발의한다고 해도 부동산을 팔면 그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2-3개 이상일 때 세금을 낸다) 실질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았다. 재산이 많으니 재산의 유동이 상대적으로 흙수저보다 자유로웠다. 게다가 자가주택이나 부동산이라는 안전망을 지니고 있으니 빠져나가는 돈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흙수저가 감옥에 있을 때 종부세를 폐지하자 이들은 바로 팔았던 부동산을 재구입하는 유동성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처음과 같은 상황인 것 같지만 체력적 손해는 흙수저가 더 컸다. 법안을 발의하고, 감옥에 가고, 임대료를 내서 취업을 해도 들어오는 돈은 없고, 다시 법안을 발의해도 흙수저들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턴이 조금 더 길었으면 어떻게 되었을 지는 모르지만 총 10턴의 과정에서 흙수저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협동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법안을 발의했을 때만 협동적이었던 것 같다. 금수저의 모략에 감옥을 간 사람은 첫 게임에서 두 번이나 감옥을 갔다. 돌아보건대 흙수저들은 이 감옥을 간 사람을 위한 어떤 명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종부세'를 발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두 번째 게임



'금수저가 당첨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쉬는 시간에 금수저를 한 번 만져보았다..'


  두 번째 게임은 세 번째 턴 까지는 자신의 수저를 밝히지 않는 룰이었다. 자신의 재산 상황은 은행장에게 카톡으로 보내서 은행장이 노트북으로 기입하고 ,각 수저들은 재산상황으로 몇 번이 금수저인지 추측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누가 몇 번인지는 모른다. 또한 각자의 수저를 밝힐 턴에 왔을 때 재산이 가장 많은 흙수저는 은수저로 계층이동할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 두 번째 게임은 기억이 가물가물 거려서 자세히 적지는 못하겠다 다만 당시의 상황을 조금 적어볼까 한다. 이번 게임에서 금수저가 나오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두 번째 게임은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쉽게 협동하지 못했다. 이 법안이 과연 '흙수저'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내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까 라는 생각이 앞섰고 실제로도 이를 위해 나름 전략적으로 행동하기 까지 했다. 가령, 내가 무슨 수저인지 들키지 않기 위해서 흙수저를 위한 법안을 반대하기도 하고 금수저를 위한 법안을 찬성하기 까지 했다. 또한 법안을 가지고 토론할 때 그렇게 행동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을 한 이유 중 하나는 은수저가 되고 싶은 것과 금수저에게 찍혀서 감옥에 가기 싫은 점이 컸다. 게임을 통해 형성된 계층으로의 상승과 사회로부터 박탈되기 싫은 기제가 발현된 기분이었다. (게임할 때 남을 속이는 재미로 그저 속이는 행위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은 흙수저에게 있어서 첫 번째 게임보다 나쁘게 흘러갔다. 금수저를 위한 법안이 더 강력했고 흙수저를 위한 법안은 계층이동을 하기에는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법안 날치기(3번이상 법안이 거절되면 그 다음 법안은 바로 발의가 된다)를 통해서 대학생을 위한 칩 제공 법안 덕분에 그럭저럭 돈은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흙수저는 병에 걸릴 위기에 쳐했고 또 누구는 돈이 별로 없어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금수저가 '부동산 하나만 있으면 금수저'라는 법안을 내놓으니 나는 찬성을 하고야 말았다. 법안이 발의가 되자 나는 모아놓았던 돈으로 바로 부동산 하나를 샀다. 그렇게 나는 '금수저'가 된 것이다.




'금수저 카드가 모자라서 은수저 카드로 대신했다. 삼성맨 같다.'


  '금수저'가 되자 불안했다. 언제 내 계층이 내려갈지, 금수저가 나를 경계하지 않을지, 흙수저가 나를 공격하지 않을지 등 여러 방향의 불안을 감수하고 금수저의 지위로 게임을 진행해야만 했다. 이것이 '졸부'의 마음인가 라며 0.3초간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런 불안을 가지고 오로지 나만 신경을 썼을 때, 나를 포함한 총 두 명의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었고 두 명의 흙수저는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흙수저는 여전히 흙수저였다. 금수저로 이동해 게임에는 승리했지만 달콤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씁쓸하고 멍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통해서 '금수저'라는 지위나 '자본가'라는 사람을 이해했다는 건 아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을 때, 혹은 다수나 소수의 사람만 잘 살고 나머지는 아무래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했을 때 그 무서움을 게임이라는 다른 방식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재미 뒤에 찾아오는 찝찝함이 그날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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