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것

<정의를 찾아서> - 파괴된 삶을 위하여

교환불가 2015. 11. 28. 17:54



  무언가를 이해하기란 설레는 것이기도 하다. 나와는 다른 서사를 살아온 이들의 서사내용을 보는 건 한 권의 소설 가치 이상은 한다고 나는 믿는다. '설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설렌다는 하나의 감정으로 있지만 각각의 내용에 들어가는 순간 감정의 길은 달리한다. 그리고 서사를 끝마치고 나는 되뇌인다. 그들의 삶을 어느정도 이해했노라고. 더 이상 이들의 삶을 단순화 시키지 않겠노라며 말이다. 하지만 전혀 접해보지 못한 주제를 처음 만나면, 나는 언제나 그들의 삶을 단순화 시키지는 않을지언정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 자신은 복잡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타인은 단순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고문의 문제, 특히 이 저서에서 다루는 주제는 고문 이후의 피해자의 삶이다. 고문 이후 이들이 법정에 서게 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법정에서 이들이 처한 상황이란 무엇인지, 그렇다면 국가나 사회가 이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 책은 짧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국가나 사회가 해야 할 일을 말하기 전에 이 책과 '자아'에 대해 조금 말해보고 싶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자아는 '사회화'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사회화 과정(가령 가족제도, 학교제도 등)을 거치면서 타자와 나 자신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획득 되는 게 자아다. 일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획득 되는 게 자아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상적인 삶에서 조금씩 조금씩 벗어나게 되면 자아는 혼란이 오기도 하고 위기상황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미 성인이 되기까지 자아는 일정 선까지의 충격은 익숙해지겠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령 한국의 경우, 특히 남성의 경우는 군대라는 곳에서 한 번 자아의 위기가 닥친다. 닫힌 공간에서 행동은 제약되고 누군가가 시시각각 감시하며, 심지어 욕설과 폭력을 견뎌야 하는 과정에서 '자아'는 위기를 겪는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자아는 파괴되고 '군대의 입맛'에 맞게 다시 재구성된다. 전역 후에도 예비군이나 꿈 속에서도 전역자들을 괴롭힌다고는 하지만 안에 있을 때와고 비교하자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특히나 2년이라는 정해진 기간이 있기에 한줄기의 희망이라도 있으며 일종의 보상심리까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고문의 문제는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다. 한 사례를 보자면 필리핀의 어느 한 남성(랜디)은 집 밖을 나서는 중 군인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엉덩이가 대검으로 찔리는 모욕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눈이 가려진 채로 끌려가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그는 그와 관련도 없는 공산당 단체의 일원이라는 자백서에 서명을 강요당하기 까지 했다. 


  나중에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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